디폴트옵션을 도입하면 퇴직연금 수익률이 높아질까요?




얼마 전 금융위원회가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 디폴트 옵션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디폴트옵션이 무엇이길래 금융위까지 나서서 적극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할까요?​

디폴트옵션제도란 퇴직연금 가입자가 부담금을 퇴직연금상품에 투자하지 않고 대기성자금으로 보유한 경우 가입자의 DC형 퇴직연금계좌에서 디폴트옵션 상품에 투자하도록 사용자가 운용 지시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합니다. ​​

현재 우리나라 DC형 퇴직연금 적립금 50조원의 80%가 원리금보장상품에 투자된 반면 펀드 등 실적배당상품투자는 16%에 불과하여 구조적으로 수익률이 낮을 수 밖에 없기 이를 변화시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보입니다.​


디폴트옵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성공적으로 도입한 미국의 401(k)를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401(k) 플랜이란 적격퇴직플랜 중 미국 세법 (Internal Revenue Code)의 401(k) 조항을 충족하는 퇴직연금제도로서 미국 DC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1978년 이전 미국의 DC형 퇴직연금은 대부분 사용자가 부담금을 납부하는 형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401(k)는 가입자(근로자)가 자발적으로 급여의 일정액을 부담금으로 납입하는 퇴직연금입니다. 투자할 상품도 가입자가 직접 선택 합니다. 기업은 401(k)에 가입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추가로 부담금을 납입할 수 있습니다.​

근로자가 401(k) 플랜 가입 여부를 자발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가입률이 저조하였는데, 특히 급여가 낮은 근로자들의 가입률이 매우 저조하였습니다. 기업이 401(k) 플랜 가입을 지원할 목적으로 가입자격을 갖춘 직원들을 일괄적으로 가입 시킬 수있었지만 이에 대한 법규정이 애매하여서 활성화 되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 총대를 맨 기관이 미국 국세청(IRS)입니다.

1998년부터 2000년에 걸쳐 IRS가 자동가입제도에 대한 결정문(ruling)을 통하여 사용자가 직원의 급여에서 일정액을 공제하여 401(k)에 가입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이를 자동가입제도 (Automatic enrollment)라고 합니다. 물론 사전에 직원들에게 충분한 고지를 하여야 하고 401(k)에 가입하기 싫은 직원은 가입 철회 (opt out)을 할 수 있습니다. ​

처음에는 401(k)의 가입자 부담률이 급여액 (pay)의 3%로 낮은 수준 이었는데 미국세청이 자동가입제도를 설명하면서 부담률 3%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미국세청이 가입자의 부담률만큼 사용자가 추가적으로 납부하는 경우에는 부담률을 3% 이상 또는 이하로 결정할 수 있고 근속연수에 따라 부담률을 상향 또는 하향될 수 있다고 결정문에서 설명한 이후에는 401(k)의 부담률이 다양화 되었습니다.​


자동가입제도의 도입으로 근로자들의 401(k) 가입이 증가하였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401(k) 가입 자격이 있는 근로자 중 약 1/3이 가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기업이 자동가입제도를 채택할 경우 직원이 투자상품을 선택하지 않으면 기업이 대신하여 선택하여야 했습니다. 손실이 발생한 경우 가입자(직원)와 손실 책임에 대한 법적 분쟁에 휘말릴 우려가 있어서 자동가입제도입을 도입하지 않는 기업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

자동가입제도를 도입한 기업도 401(k)의 손실 발생을 우려하여 대부분 MMF 등 안전 상품에 투자하였고 결과적으로 수익률이 매우 저조 하였습니다. 원인은 다르지만 퇴직연금의 투자수익률이 1%대를 기록하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와 상황이 비슷하였습니다.​


401(k) 가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디폴트옵션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2006년 미국 근로자퇴직소득보장법 (ERISA)이 개정되었습니다. 자동가입제도를 도입한 기업이 법에서 규정한 적격디폴트투자상품 (QDIA: Qualified Default Investment Alternatives)에 투자하는 경우 가입자가 직접 운용지시를 한 것과 동일하다고 규정하여 사용자가 가입자의 DC형 퇴직연금계좌에서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법적 (Compliance) 문제가 없도록 하였습니다.​


적격투자상품 (QDIA)란 주식과 채권을 결합하여 장기적으로 원금을 보존하고 수익을 출구하는 펀드 또는 모델포트폴리오를 말합니다 (미국 노동부 정의). 간략히 디폴트 옵션 (Default option)이라고 합니다.​​


적격투자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 중 하나의 조건을 충족하여야 합니다.​

1) 가입자의 나이와 은퇴시기를 고려하여 설계된 투자상품: 은퇴시기까지 점진적으로 주식 비중이 낮아지고 채권비중이 높아지는 타겟데이트펀드 (TDF) 또는 라이프 사이클 펀드가 이에 해당합니다.

​ 2) 가입자의 나이와 은퇴시기를 고려하여 운용되는 투자일임계좌(managed accounts)

​ 3) 종업원 전체의 특성을 고려하여 설계된 상품: 주식과 채권 비중이 일정한 혼합형펀드 (Balanced products)

​ 4) 원금보존상품: 첫 가입일 이후 120일까지만 투자 가능 (가입자가 401(k) 가입을 철회할 경우 대비)​



미국의 디폴트옵션제도는 성공하였을까요?​

디폴트옵션제도가 성공하였느냐는 다음의 두 가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1) 401(k) 가입자 증가 여부​​

자동가입제도를 채택한 기업의 직원의 퇴직연금 가입률은 93%인 반면 자발적 가입제도를 채택한 기업의 퇴직연금 가입률은 47%에 불과하여 자동가입제도가 401(k) 가입률을 증가시켰습니다 (Vanguard 2017년 서베이 결과).​

DC형 퇴직연금제도를 채택한 민간 기업의 98.8%가 QDIA제도를 도입하였고, 가입자가 운용지시를 하지 않은 경우 기업의 85.2%가 타겟데이트펀드(TDF)를 투자상품으로 지정하여 투자하였습니다 (Callan의 2017년 서베이 결과).

2)디폴트옵션 (QDIA)의 만족할 만한 수익률 달성 여부

​​아래는 Vanguard Target Retirement 2030 fund의 과거 10년 동안의 누적 수익률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자료: Vanguard 홈페이지>



​2009년 4월에 1만달러를 투자한 경우 2019년 4월말에 28,176달러로 증가하였는데 연평균 수익률이 10.9%입니다. 설정일(2006.6.7일) 이후 수익률은 연 6.6%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하여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연 6.6% 수익률을 달성하였습니다. 다른 타겟데이트펀드도 비숫한 성과를 달성하였습니다.​

퇴직연금은 적립식 투자이기 때문에 전체 적립금의 수익률은 이보다 낮을 것이고 향 후에도 주가가 장기적으로 상승할 것이란 보장은 없지만 현재까지의 결과로 판단한다면 미국에서 디폴트옵션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디폴트옵션이 도입되면 성공할까요?

디폴트옵션에 포함될 상품을 공급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디폴트옵션의 대표상품인 타겟데이트펀드의 경우 대형 운용사들이 글로벌 운용사들과 자문계약을 체결하여 운용하고 있습니다. TDF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주식과 채권비중을 일정하게 가져 가는 혼합형펀드도 (balanced fund) 운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


DC형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는 기업이 디폴트옵션 상품을 가입자(직원)의 퇴직연금계좌에서 투자하도록 운용지시할 수 있는가가 성공의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미국처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을 개정하여 사용자가 가입자를 대신하여 디폴트옵션 상품에 투자하여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사용자는 어떠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회의 환경노동소위에서 미국과 같은 정도로 사용자의 부담을 경감해 주는 개정안이 도출될지는 지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TDF가 DC형 퇴직연금에서 대표상품으로 자리 잡은 것은 미국 주가가 상승세를 지속한 부분도 있지만 가입자가 운용지시를 하지 않은 경우 사용자가 가입자의 퇴직연금계좌에 TDF 위주로 운용지시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


우리나라에서 디폴트옵션 상품은 TDF보다는 주식비중이 낮은 혼합형펀드가 더 활성화 될 수도 있습니다.

TDF는 주식편입비중이 80%인 펀드도 있기 때문에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하에서는 적립금의 40%가 손실로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부담금을 계속 적립하면 하면 회복될 가능성이 높지만 손실이 회복되기까지는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노조와의 갈등을 감수해야 하는데, 사용자가 그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TDF를 선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디폴트옵션제도가 도입되었을 때 해결하여야 할 과제가 더 있습니다. ​

우리나라의 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6년 정도 됩니다. 법에 의하면 직장을 옮길 때 DC형 퇴직연금을 IRP로 이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DC형 퇴직연금 사업자와 IRP의 사업자가 동일하면 DC형 계좌에서 투자하고 있는 펀드는 그대로 IRP로 이관됩니다. ​

하지만 DC형 퇴직연금 사업자와 IRP의 사업자가 상이한 경우 DC형 퇴직연금계좌에 있는 펀드를 모두 환매하여 현금화 한 후 IRP계좌로 이체할 수 있습니다.​

디폴트옵션제도를 도입하여 TDF등 라이프사이클펀드에 가입하는 주목적은 은퇴할 때까지 해당 상품에 적립식으로 장기투자할 경우 높은 수익을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을 옮기기 전에 글로벌 증시가 폭락하여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였을 때 추후에 손실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직장을 바꾸더라도 해당 상품에 계속 투자할 필요가 있는데 DC형 퇴직연금사업자와 이체할 IRP사업자가 상이한 경우에는 펀드를 환매하여야 합니다. ​

가입자들이 펀드를 환매하여 손실을 시현한 후에 다시 해당 상품에 투자할 가능성도 낮아 보이지만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펀드를 환매하여 IRP사업자에게 이관한 후 IRP계좌에서 펀드를 다시 가입할 때까지는 빨라야 3주 정도 소요됩니다. 그 동안에 주가가 급등한 경우에 가입자는 손실을 만회할 기회를 놓쳐 버릴 수도 있습니다. ​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퇴직연금사업자가 다르더라도 일반 펀드의 판매사 이동이 가능한 것처럼 퇴직연금사업자가 다르더라도 DC형 퇴직연금계좌에서 보유 중인 펀드를 IRP계좌로 이관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디폴트옵션 (QDIA)로 승인된 상품은 모든 퇴직연금사업자가 판매하도록 의무화 하여야 합니다. ​

또한 퇴직연금(DC, IRP)계좌에서 55세 이전에 인출할 수 있는 요건을 강화하여 가입자의 장기투자를 유도하여야 합니다.​

위 두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디폴트옵션제도가 법적으로 허용되었더라도 분쟁소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

투자기간은 평균적으로 6년 정도 밖에 안되는데, 그리고 법이 허용하는 중도인출요건에 따라 인출 했는데 은퇴까지 장기투자에 적합한 주식비중이 높은 TDF에 사용자가 투자를 하여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경우 이를 수용할 가입자(노조)는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