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DC형에서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는 어떻게 운영될까요?




퇴직연금의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 ​

기업이 망하더라도 안전하게 관리되면서 투자 성과도 좋아서 국민연금과 함께 노후생활을 위한 중요한 소득원으로 활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년이면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지 15년째가 된다. 퇴직연금 적립금도 곧 200조원을 넘어서게 된다. 퇴직연금제도의 도입으로 퇴직급여의 안전성은 제고되었지만 최근 수익률은 실망스럽기만 하다. ​

저조한 수익률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 변경, 특히 기금형퇴직연금제도와 디폴트옵션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들이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특히 11월초에 발의된 개정안은 여러 가지로 눈길을 끈다. 금융기관 위주로 운영되던 퇴직연금이 진짜 주인인 가입자(근로자)의 의견을 반영하여 운용될 수 있는 틀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

여기서는 11월 개정안의 가장 큰 특징을 설명한 후 기존 계약형제도에 대한 평가와 기금형 퇴직연금제도의 핵심 내용과 의미를 알아 본다.​​​




계약형과 기금형의 차이(11월 근퇴법 개정안 중심)​​



기금형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되면 적립금을 운용하는 주체가 변화한다.​

기금형제도에서는 수탁법인이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한다. 기존 계약형에서는 DB형의 경우 기업이 운용을 담당하였고 DC형 제도에서는 근로자들이 자신의 퇴직연금계좌를 직접 운용하였다.​​


동일한 퇴직연금기금에 대해서 자산운용기관, 운용관리기관 및 자산관리기관이 서로 달라야 한다.​

계약형에서는 동일한 퇴직연금사업자(금융기관)이 운용관리기관과 자산관리기관 업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


독립계리업자가 DB형 퇴직연금에 대해서 기업이 법에서 정한 최소 수준을 적립하였는지 검증한다.​

DB형 퇴직연금제도에서는 기업이 근로자들에게 지급하여야 할 퇴직연금(공식 용어로 “연금채무(pension liability)”라고 한다)을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 정하는 최저 수준 이상을 적립할 의무가 있다. 최근 자본시장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8년말 기준으로 DB형 퇴직연금의 연금채무가 72조원인데 59조원만 퇴직연금으로 적립되어 있다고 한다. 근로자들의 입장에서는 퇴직연금의 적립비율(퇴직연금적립금을 연금채무로 나눈 값)이 얼마인지를 알아야 하지만 계약형에서 일부운용관기기관이 이를 소홀히 하여 감독당국으로부터 과태료 처분을 받기도 하였다. 독립계리업자가 적립비율을 검증한다면 근로자들의 퇴직연금 수급권이 강화될 것이다.​

이외에도 퇴직연금 가입자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 운용관리기관에서 수탁법인이 위탁하는 전문기관으로 변경된다. 기금형제도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모든 비용은 기업이 담당한다. 이는 계약형에서도 동일하다.​​​


계약형 퇴직연금제도에 대한 평가​

계약형 퇴직연금은 기업이 퇴직연금사업자(금융기관)들과 계약을 통하여 퇴직연금제도를 설정하고 운영하는 체제로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다. 계약형 퇴직연금제도에서는 운용관리기관을 맡고 있는 은행, 보험사 및 증권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퇴직연금의 성공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퇴직연금에 적합한 상품을 제공하고 가입자(근로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제도 및 투자 교육이 중요한데 이를 운용관리기관이 법에 의해서 전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용관리기관들은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퇴직연금제도를 확산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IT투자도 적극적으로 하여 가입자들이 비대면채널을 통해서 퇴직연금상품을 교체할 수 있도록 편의성도 제고하였다. 하지만 퇴직연금수익률을 제고하고 가입자를 교육시키는데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이는 계약형제도가 안고 있는 구조적 약점이다.​

계약형 퇴직연금제도에서는 퇴직연금사업자, 특히 운용관리기관 위주로 퇴직연금이 운영 된다. 퇴직연금에서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은 운용관리기관이 제공하는 것으로 제한된다. 퇴직연금 적립금을 투자할 역량을 갖춘 근로자들 입장에서는 운용관리기관이 제공하는 상품 라인업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반면 투자지식이 부족한 근로자는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모른다.​

투자지식이 부족한 근로자들에게는 퇴직연금을 운용할 수 있는 정보와 투자 교육이 중요하지만 개별 근로자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는 매우 제한적이다. 운용관리기관들이 가입자교육을 하더라도 기업이 이에 대한 비용을 지급하지 않은 것도 가입자교육의 품질을 저하시키는 요인이다.​

계약형제도하에서 대형 금융기관 위주로 자금이 집중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퇴직연금사업에서 이익을 내지 못하는 중소형 사업자들이 사업을 접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대형금융기관에 의한 퇴직연금사업의 과점현상은 심화될 것이다. 과점현상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퇴직연금사업자들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관리수수료의 인하를 유도하는 순기능도 있기 때문이다.​

과점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가입자(근로자)들에게 불리한 점도 있다. 퇴직연금의 특성상 장기투자가 필요하고 가입자별로 퇴직 시점이 상이하기 때문에 적절한 투자교육과 함께 맞춤형 투자전략이 필요하다. DC형의 경우 가입자들의 상담창구는 대부분 금융기관의 본지점의 영업직원들이다. 하지만 창구의 영업직원들은 기본적으로 퇴직연금 적립금 투자관련 자문을 제공할 수 있는 역량과 시간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평균근속기간이 3년인 사업장에 근무하는 가입자들에게 주식형상품이나 단순히 나이가 30대니까 타겟데이트까지 20년 이상 남은 타겟데이트펀드(TDF)를 추천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

가입자(근로자)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IRP(개인형 퇴직연금)와 마찬가지로 DC형 퇴직연금제도에서는 근로자들이 알아서 투자상품을 골라서 투자하여야 한다. 지식도 없을뿐더러 현재 직장 일에도 바쁘기 때문에 퇴직연금에 대한 신경을 쓰지 못한다. 가입할 때 대부분 예금 등 원리금보장상품에 투자되게 되고 현 시스템에서는 예금의 만기가 도래하면 자동적으로 동일한 유형의 원리금보장상품에 재예치되게 되어 있다. ​

매년 수익률이 1%대에 머무르면서 퇴직연금사업자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연례행사처럼 언론에서 조망된다. 금융기관들이 퇴직연금 관리수수료를 인하하고는 있지만 대부분 개인이 자발적으로 납입하는 자기부담금에 대한 수수료 인하이다. DC형이나 IRP계좌에 이체된 퇴직급여에 대한 관리수수료에 대한 인하 폭은 크지 않아서 근로자들을 현혹하는 부분도 있다. ​

퇴직연금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퇴직연금수수료를 받지 않겠다는 금융기관이 증가하고 있다. 퇴직연금은 장기투자가 가능한 상품이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위험자산에 장기투자할 경우 좋은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해외 사례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주가는 변동성이 높기 때문에 펀드 투자시 어떤 해에는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손실도 발생할 수 있다. 금융기관들이 수수료를 연간 단위로 징수하는데 손실이 발생할 때 마다 관리수수료를 면제하겠다는 것이다. 금융기관 직원들이 퇴직연금을 정기예금에 투자하는 것을 권고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1%대 금리가 나오는 지금이야 그나마 나을 수도 있지만 제로금리가 예상되는 미래에는 대안이 있는 것 같지 않다. ​​​


기금형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되면 달라지는 점은?​

기금형퇴직연금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기업과 근로자가 공동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협업이 잘 이루어진다면 계약형제도와 비교하여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근로자들의 특성이 반영되는 운용을 통하여 기업과 근로자가 윈윈할 수 있는 제도이다. ​

기금형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탁법인이다. 기금형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퇴직연금제도 운영을 전담하는 수탁법인을 설립한다.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은 단독으로 수탁법인을 설립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 두 개 이상의 사업장이 합하여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이 되면 설립이 가능하다.​

수탁법인의 이사회가 퇴직연금 운용 및 관리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이사회는 노사 동수로 구성되는데 여기에 외부전문가도 추가로 선임된다. 외부전문가는 기업이 근로자대표와 협의하여 선임한다. 이사회는 퇴직연금 가입자 특성에 적합한 적립금 운용계획서(IPS: Investment Policy Statement)를 작성하여 수탁법인의 운용조직 또는 외부자산운용기관이 이를 준수하여 적립금을 운용하도록 한다. IPS는 적립금 운용의 원칙, 적립금 운용성과의 평가 등 적립금 운용과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퇴직연금기금의 가입자(근로자) 특성 등을 반영한 전략적 자산배분과 투자위험의 수준을 설명하는 투자정책서라고 할 수 있다.​

수탁법인은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계약형제도의 퇴직연금사업자가 담당하는 업무도 수행한다. 단, 자산관리업무는 외부금융기관에 위탁하여야 하고 적립금 운용업무와 운용관리기관업무의 일부 또는 전부를 근퇴법에 의해서 등록된 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

이 번 개정안에서 특징적인 점은 DC형 퇴직연금제도에 대해 기금형을 도입하도록 허용된 점이다. 과거의 근퇴법 개정안에서는 DB형에 한해서 기금형제도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DC형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기업이 기금형제도를 도입하는 경우 수탁법인이 근로자들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통합하여 운용한 후 이를 근로자 DC계좌별로 분배하는 형식을 취한다. 참고로 계약형제도에서는 개별 근로자가 자신의 DC계좌에 대한 투자상품을 선정하여 투자하고 있다.​

적립금의 운용 업무는 자산운용회사 또는 전문사모집합투자업을 등록한 증권사가 인적,물적 요건을 충족하여 고용노동부에 등록한 기관만이 수행할 수 있다. 투자일임회사는 적립금 운용을 위탁 받을 수 없고 자산운용회사라 하더라도 고용노동부에 자산운용기관으로 등록하여야 퇴직연금기금을 위탁운용할 수 있다.

​기금형제도에서 자산관리업무는 계약형과 동일하지만 운용관리업무의 범위는 계약형보다 축소된다. DC형기금형제도의 경우 운용관리기관은 적립금 운용현황의 기록,보관,통지업무로 한정되고 DB형 기금형제도의 경우 여기에 제도설계 및 연금계리가 추가된다. 급여지급능력 확보 여부 확인 및 부담금 산정업무는 수탁법인이 수행하지만 독립계리업자로부터 검증을 받아야 한다. ​기금형제도에서는 운용관리기관의 업무가 대폭 축소되기 때문에 운용관리수수료가 현재 계약형 수준보다 대폭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운용관리업무를 수행하고자 하는 퇴직연금사업자가 많지 않을 수도 있다. 수탁법인은 운용관리업무업무의 일부 또는 전부를 퇴직연금사업자에게 위탁할 수 있지만 규모가 큰 수탁법인은 자체적으로 운용관리업무를 수행할 가능성도 있다. ​

자산관리업무는 퇴직연금사업자에게 위탁하여야 한다. 근퇴법에 의하여 자산운용회사, 증권회사, 은행, 보험회사, 신용협동조합중앙회, 새마을금고중앙회 및 근로복지공단이 퇴직연금사업자(운용관리관 및 자산관리기관)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번 개정안에서는 동일한 수탁법인이 운영하는 퇴직연금의 경우 자산운용기관, 운용관리기관 및 자산관리기관은 각각 달라야 한다. 예를 들면, 자산관리기관은 자신이 관리하는 퇴직연금제도에 대해서는 자산운용기관 또는 운용관리기관으로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 ​

기금형제도하에서는 은행 및 보험회사는 자산운용기관이 될 수 없다. 기금형제도에서는 운용관리기관의 역할이 제한되기 때문에 은행 및 보험회사는 주로 자산관리기관으로서 업무를 담당할 가능성이 높다. 증권회사의 경우 자산운용기관 및 운용관리기관의 업무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산운용회사의 경우에는 자산운용기관으로서 업무에 특화할 가능성이 높다. ​

동일한 수탁법인에서 운영하는 퇴직연금에 대해서는 각 금융기관들이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하여 자산운용기관, 운용관리기관 및 자산관리기관 패키지로 묶어서 지원하는 수 밖에 없다. 물론 수탁법인이 물적 인적자원을 구비하여 자산운용기관의 업무와 운용관리기관 업무를 내부에서 수행할 수도 있다.​

기금형제도에서는 가입자교육을 수탁법인이 담당한다. 근퇴법 시행령에서 정한 요건을 갖춘 전문기관에 가입자 교육을 위탁할 수 있다. 이 경우 수탁법인의 퇴직연금적립금을 운용하는 자산운용기관이 가입자 교육을 담당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적립금을 운용하기 때문에 현재 계약형제도보다 가입자 교육의 실효성이 높아질 것으로 판단된다.​​​


기금형퇴직연금과 계약형 퇴직연금 제도의 선택​

기금형제도가 도입되더라도 기존의 계약형제도도 공존하게 된다. 하지만 기업별로는 기금형제도와 계약형 제도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한다. 퇴직연금제도를 최초로 설정하는 경우 기업이 근로자대표와 협의하여 기금형이나 계약형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에 퇴직금제도 또는 계약형퇴직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기업이 기금형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

근로자들은 기금형제도를 선호할 것으로 판단된다. 자신들의 퇴직연금을 운용하고 관리할 수탁법인의 이사회에 근로자를 대표하는 자가 포함되어 퇴직연금 운용과정에서 근로자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기업의 입장은 복잡할 것 같다. ​

노사관계뿐만 아니라 계약형과 기금형에서 발생하는 비용 수준 등을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DB형 퇴직연금을 수탁법인이 운영하여 손실을 본 경우에 이를 기업이 부담하는 것과 중소기업의 경우 현재 퇴직연금사업자로 활동하고 있는 은행과의 거래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계약형제도보다 운용관리수수료가 낮아질 것이고 투자일임계정에서 통합운용되어 운용규모가 커지면 거래비용이 감소한다. 기금형이 위험자산투자시 ETF를 활용한다면 펀드보수비용이 큰 폭으로 하락하여 중장기적으로 수익률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제고시킬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계약형 퇴직연금제도에서 DC형 가입자들이 위험자산 투자시 공모펀드에 투자하여야 하기 때문에 연 1~2%의 펀드보수비용이 발생한다.​

결국은 투자수익률이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향후 금리는 추가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도 제로금리를 전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퇴직연금기금을 체계적으로 위험자산에 투자하지 않으면 투자수익이 수수료비용도 커버하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이 있다. ​